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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강세황의 눈으로 안산을 여행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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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링3
2026-08-19 02:01 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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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과 단원미술제 선정 작가들을 함께 보여주는 ‘단원의 정원에서’를 보러 왔다. 이재삼, 김선형, 유근택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은 ‘단원’이라는 오래된 이름이 어떻게 오늘의 미술로 이어지는지 보여주었다. 주옥같다는 조금 낡은 표현을 기꺼이 꺼내 쓰고 싶을 만큼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김홍도를 만나러 왔다가 먼저 동시대의 김홍도들을 만난 셈이다.
다른 전시장 ‘김홍도 오감화’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표암 강세황이었다. 김홍도는 어릴 때 안산에서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웠다. 시서화에 능하고 새로운 문물과 화법에 열려 있던 그는 어린 김홍도의 재능을 알아본 스승이자 후원자였다. 그 순간 김홍도보다 안산이 궁금해졌다. 대체 18세기 안산에는 무엇이 있었기에 김홍도 같은 예술가가 자랄 수 있었을까.
당시 안산에는 성호 이익을 중심으로 새로운 학문을 탐구하는 지식인들과 강세황 같은 문인화가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위대한 예술가 한 사람이 이곳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아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가르치고 세상과 연결해준 사람이 같은 동네에 있었다. 예술가는 혼자 태어나지 않는다.
그 생각을 하자 안산에 있는 또 다른 예술의 거점 경기도미술관에 가야만 할 이유가 생겼다. 하나는 18세기 안산이 어떻게 예술가를 길러냈는가를 보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21세기 경기도가 어떻게 새로운 예술가를 길러내는가를 보는 곳이었으니까.
마침 경기도미술관에서는 개관 20주년 청년작가전 ‘우리의 여름에게’가 열리고 있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젊은 작가 26팀의 전시다. 나는 조금 엉뚱한 놀이를 시작했다. 강세황이라면 누구 앞에서 멈췄을까. 250여년 전 어린 김홍도를 바라보았던 그의 눈을 빌려 미래가 궁금한 세 작가를 골랐다.
첫 번째는 권은비였다. 버려진 피아노와 베틀, 폐허에서 가져온 돌과 시멘트 조각, 그을린 나무와 폐기계 부품을 엮은 ‘폐허의 잔해로 직조한 시’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피아노는 음악을 연주하지 않고 베틀은 옷감을 짜지 않는다. 대신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기억을 직조한다. 강세황이라면 이렇게 평하지 않았을까. 형상을 그리지 않았으되 그 안에 사람이 있고, 소리를 연주하지 않았으되 그 안에 슬픔의 소리가 있다.
두 번째는 이해반이었다. 산과 물, 구름과 파도, 식물과 빛을 닮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풍경. 직사각형 캔버스를 벗어나 가장자리까지 산세처럼 꿈틀거렸다. 산은 산을 닮지 않고 물은 물을 닮지 않았으나 그 기운은 산수 사이에 있다. 강세황의 화평을 멋대로 상상해보았다.
세 번째는 송승준이었다. 온갖 기이한 물건을 수집했던 옛 ‘호기심의 방’을 뒤집어 ‘호기심이 사라진 방’을 만들었다. 물건은 가득한데 그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눈은 어디로 갔을까. 새로운 화법과 문물에 열려 있던 강세황이라면 ‘만물이 눈앞에 있어도 궁금히 여기지 않으면 보지 못한 것과 같으니, 먼저 보는 마음을 잃지 말라’고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들이 미래의 김홍도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김홍도가 위대한 화가가 되었다는 결과를 알고 그의 어린 시절을 바라본다. 그러나 강세황에게는 그런 정답지가 없었다. 그들 가운데 미래의 단원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강세황이라고 정말 어린 김홍도의 미래를 모두 알고 있었을 리 없다. 다만 그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 앞에서 멈춰 설 줄 알았다.
예술가를 길러내는 도시란 위대한 예술가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아직 위대하지 않은 예술가 앞에서 기꺼이 멈춰 서는 사람들이 있는 도시가 아닐까.
이 칼럼 독자 중 상당수는 주민참여예산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명칭대로 자신이 사는 지역의 예산을 그 지역 주민이 직접 짜는 것이다. 1989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처음 시작된 후 브라질의 다른 지역으로 퍼졌고, 이어서 유럽과 북미의 많은 도시로 확산됐다. 우리는 2003년 광주 북구에서 처음 도입한 후, 2011년 관련 법을 제정해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의무적으로 시행하게 됐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모든 시군구가 시행하다 보니, 잘되는 곳도 있고 엉망인 곳도 있다. 단체장의 의지와 담당 공무원의 열의에 따라 성과는 천차만별이지만 기본 내용은 유사하다. 일정 규모(크지는 않다)의 예산을 주민참여예산 몫으로 할당하고 주민제안사업 공모를 받는다. 모인 제안사업을 두고 동·읍·면 대표로 구성된 참여예산위원들이 토의와 투표를 통해 사업을 선정한다. 산책로 조성, 통학로 안전시설, 스마트 횡단보도 등 자기 동네 여건 개선 사업이 많다.
본래 주민참여예산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구현이라는 취지에 따라 내가 사는 마을의 예산을 내 손으로 짜는 것, 그러니까 기초지자체 이하에서 실행하는 것을 염두에 뒀다. 그런데 2011년 관련 법을 만들면서 광역지자체도 대상이 됐고, 그에 따라 2012년부터 서울시 등 광역 단위에서도 시행했다. 이후 주민참여예산의 범위는 더욱 확대돼, 2018년부터는 중앙정부에서도 시행했다. 국가 예산편성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명칭도 그에 걸맞게 국민참여예산이 됐다.
국민이 선택 사업에 10만원씩 배분
국민참여예산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구현은 아니다. 그보다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직접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가 결합된 재정 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국민참여예산을 통해 채택된 사업으로는 미세먼지 저감 도시 숲 조성 사업, 국군 장병 패딩형 동계 점퍼 지급, 살인 피해 유가족 회복 프로그램, 모바일 전자증명 확산 사업 등이 있다. 주민참여예산이 내 지역의 여건 개선에 중점을 둔 반면에 국민참여예산은 국민 일반의 삶의 질 향상과 약자 권익 증진에 방점이 있다. 국민참여예산은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확고하게 정착됐다고 하기 어렵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국민참여예산과 관련해 흥미로운 제안이 있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이 경향신문 7월15일자 칼럼에서 제안한 ‘국민배분 투표’다. 이 연구위원은 얼마 전 한창 논란이 된 초과세수(혹은 추가세수) 활용 방안으로서 이를 제안했다. 초과세수 규모가 100조원이 된다고 하는데, 그중 일부를 국민이 직접 선택한 사업에 배정하자는 것이다. 방법은 대략 이렇다. 예산 투표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고 14세 이상 전 국민에게 자신이 원하는 국가재정사업에 10만원씩 배분할 수 있게 한다. 14세 이상 인구가 대략 4700만명이니 예산 규모는 4조7000억원이 된다. 각자가 배정받은 10만원을 원하는 사업에 배분하면, 정부와 국회는 그 결과대로 해당 사업에 예산을 배정한다는 것이다.
정말 신박한 아이디어 아닌가. 그야말로 국민참여예산 취지에 딱 들어맞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예산감시와 참여 활동을 해온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는 이 아이디어를 구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 연구위원이 제안한 ‘국민배분 투표’ 사이트( 만들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름과 메일주소를 기입한 후, 10만원을 원하는 사업에 배분하면 된다. 나도 사이트에 들어가서 해봤다. 생각보다는 어려웠다. 정부 예산사업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은 분야-부문-프로그램-단위사업-세부사업의 위계 구조로 이뤄져 있다. 특정 예산사업은 세부사업을 지칭한다. 그런데 세부사업은 8000개가 넘는다. 이를 모두 제시하고 이 중에서 선택하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이 사이트에는 프로그램까지만 제시돼 있다. 프로그램도 600개가 넘으니 적지 않다. 게다가 프로그램 이름만 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보완책으로 10만원 중 1만원은 주관식으로 내가 원하는 특정 사업명을 기재하고 재원을 할당할 수 있어 유용했다(현재 없는 새로운 사업을 제안해도 된다). 아직 보완할 데가 여기저기 보이지만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모의투표 참여해 실제로 구현되길
이 실험을 진행하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예전에도 국가 예산의 일부를 국민 참여로 편성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이름하여 ‘세상을 바꾸는 1% 지렛대 예산’으로 2014년 말에 한겨레21과 공동기획으로 수행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는 데 긴요한 재정사업이지만, 없거나 부족했던 것들을 시민 추천으로 발굴했다. 그때 선정된 사업에는 자살 예방,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지원, 청소년 회복센터 지원, 이주노동자 권익 보호 사업 등이 있었다. 물론 일종의 캠페인이었고, 실제로 정부 예산의 1%가 이 사업들에 배정된 것은 아니다(참고로 2015년 정부 예산이 375조원이니 1%면 3조7500억원이다). 하지만 여론을 환기한 덕에 나중에 제안 사업의 다수가 실제 예산에 반영됐다.
지금 진행 중인 초과세수 국민배분 투표 역시 일종의 실험일 뿐이며, 실제로 예산이 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실험에 참여한다면, 그 결과는 실제 초과세수로 확보한 예산 배정에 제법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국민배분 투표의 장점으로서 정책 토론의 장이 열리고 정치적 효능감이 높아진다는 것을 들었다. 완전히 동의한다. 시민들은 각종 모임에서 어떤 사업을 선택할지를 토의하게 되고, 정부 부처와 이해관계집단은 자기들 사업의 필요성을 두고 국민을 설득할 것이다. 국민은 다양한 정부 사업에 관심을 둘 것이고,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다. 일단, 이 모의실험에 동참하자. 그래서 이 실험이 유의미한 반향을 일으키게 하자. 그러면 진짜 국민배분 투표도 가능하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측은 1만명 이상 참여가 목표라고 한다. 구글 등 검색창에서 ‘10만원 예산 투표’라고만 쳐도 사이트가 뜬다고 하니, 당장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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