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범죄전문변호사 [정동칼럼]정치, 승리의 기억을 버려라
2026-08-19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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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수원성범죄전문변호사 오디세우스는 20년 만에 이타카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가 밟은 땅은 떠날 때의 그곳이 아니었다. 궁에는 구혼자들이 들어앉아 남의 재산으로 잔치를 벌였고, 주인인 양 행세를 했다. 호메로스가 스무 권이 넘는 분량을 들여 묻는 것은 단순한 귀향의 여정이 아니다. 돌아갈 곳이 이미 사라졌을 때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가장 위험한 장면은 폭풍도, 괴물도 아니었다. 세이렌이었다.
세이렌을 관능적 유혹으로 기억한다면 원전을 잘못 읽은 것이다.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우리는 그대가 트로이에서 이룬 모든 일을 알고 있노라.”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노래한다. 그 섬에 뱃사람의 뼈가 쌓인 이유는 미지의 쾌락이 아니라 지나간 승리의 기억이었다. 사람을 난파시키는 가장 달콤한 소리는 언제나 한때 옳았던 자기 자신이다.
지금 우리 안에서 울리는 노래도 그렇다. 합당, 연대, 의리. 세 단어의 시제는 전부 과거형이다. 그런데 그 과거의 노래는 지금 누가 부르고 있는가.
정치를 논평하는 자리가 정치보다 강해진 지 오래다. 몇개의 마이크가 여론의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이 정치인의 명운을 가른다. 문제는 그 권력에 책임이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선거로, 공직자는 감사로 심판받지만 평론은 심판받지 않는다. 틀린 예측을 열 번 해도, 어제와 정반대의 말을 오늘 해도, 다음주에 또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나는 이들을 촉법 평론가라 부른다. 판을 흔들 힘은 어른의 것인데 책임을 물으려 하면 아무것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 옆에는 용역 평론가가 있다. 분석이 아니라 편을 파는 사람들이다. 결론이 분석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해석이 아니라 하청이다.
그래서 정치에도 VAR(비디오 판독)이 필요하다. 경기의 오심은 화면을 되돌려 바로잡지만 평론의 오심에는 되돌릴 화면조차 없다. 3년 전 발언을 스스로 확인하게 만드는 장치, 소수가 채널을 독점한 구조를 여는 비평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출연 총량제’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은퇴를 선언하고도 가장 큰 마이크 앞에 앉아 있다면, 그것은 책임만 골라 내려놓은 발언권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이 노래에 붙은 제목이다. ‘노무현 정신’. 지난 3일 야당의 한 중진은 검찰개혁 방향을 겨냥해 이것이 노무현 정신이냐고 물었다. 안에서 정의하지 못한 개념은 반드시 밖에서 무기가 되어 돌아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결정적 장면은 하나같이 자기 진영이 반대한 선택이었다. 이길 수 있는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서 거듭 낙선한 것, 지지자들이 반발한 대연정을 제안한 것, 진보 진영 전체가 등을 돌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인 것. 평가는 갈려도 방향은 갈리지 않는다. 그는 진영의 대표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었다.
탈권위와 보통시민의 정치를 말한 이름이, 지금은 소수가 서로의 확신을 확인하는 명분으로 쓰인다. 그 이름을 가장 크게 부르는 쪽이 실은 그에게서 가장 멀리 떠나 있다. 계승이 ‘우리끼리 다시 뭉치자’로 번역되는 순간, 그것은 계승이 아니라 도용이다.
그사이 국정의 시계는 따로 흐른다. 국정 지지율은 43.3%, 부정 평가는 53.0%다. 세제개편안은 발표 나흘 만에 재검토 지시가 내려졌고, 서울 주택 착공은 연간 목표의 5분의 1에 그쳤다. 이 숫자 앞에서 할 말은 야당이 부당하다는 항변이 아니라, 야당이 옳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못해서 나온 숫자라는 인정이다. 나라가 퇴행하든 사회가 망가지든 이를 개의치 않는 정치가 가장 나쁜 정치다.
다시 오디세우스로 돌아간다. 목마를 설계해 전쟁을 끝낸 그는 서사시 속에서 그 승리를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의 계략이 진보가 아니라 탐욕에서 비롯됐음을 되새기며 괴로워한다. 이긴 자가 자신을 의심하는 것, 그것이 성숙이다.
서사시의 마지막도 복수가 아니다. 구혼자들을 몰살한 뒤 유족들이 창을 들고 몰려오자 신들이 개입해 지난 일을 잊으라고 명한다. 20년의 유랑과 하루의 학살 끝에 시인이 남긴 결론은 하나다. 되갚음으로는 아무것도 세울 수 없다. ‘기억’에 의존하는 정치가 이제는 ‘기대’의 정치로 변해야 할 때이다.
여당에 필요한 것은 진영의 복원이 아니라 성과의 축적이다. 이겼던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무엇을 해냈는지로 기억되어야 한다. 오디세우스가 돌아간 곳은 20년 전의 이타카가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돌아가려는 곳도 마찬가지다. 그곳은 이미 없다.
정부가 대대적인 부동산 공급·금융 대책을 발표한 13일, 국토교통부와 재정경제부는 사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 자료를 바탕으로 강남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의 주요 고가 아파트 호가가 지난 3일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하락했다는 내용의 참고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자료는 국토부가 작성한 것으로 강남구 압구정 현대1·2차 전용 198㎡ 매물이 지난달 13일 119억원에 거래됐으나 세제개편안 이후인 8일엔 27억원 낮은 92억원에 거래됐다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향후 집값 상승 기대심리를 꺾겠다는 ‘대규모 공급대책’과 맞물려, 세제개편 이후 주요 주택 가격도 이미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입니다.
자료가 관심을 모은 것은 정부가 한국부동산원 등 공식 통계가 아니라 이례적으로 민간의 호가 자료를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면적이 같더라도 층수 등 여러조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어 단순 호가만으로는 세제 전후 가격 변화에 대한 정확한 비교가 어렵습니다. 정부 안에서도 “세제 개편 전후 똑같은 물건이 아닌데 한 두개 경우로 효과가 있다고 얘기하기엔 성급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 사이에선 이번 세제개편의 성공을 위해선 집값이 하락하는 ‘시그널’을 줌으로써 매물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정부가 부랴부랴 자료를 배포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그렇지만, 취지와 달리 이번 세제개편을 통해 전반적인 주택가격이 하락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반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강남3구에 밀집된 초고가주택의 가격은 억제할 수 있더라도 세 부담이 낮아진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다른 지역을 중심으로는 가격 상승 압력이 계속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가격은 안정될 수 있을까요.
이번 세제개편안의 핵심은 ‘보유’ 중심의 부동산세제를 ‘거주’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거주용 1주택에 대해선 세부담을 낮춰주고 비거주·다주택·초고가주택에 대해선 세부담을 높인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핵심내용을 보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기본공제액을 거주용 1주택은 현행 공시가격 12억원에서 14억원(시가 약 20억원)으로 올려 과세에서 제외되는 1주택자의 범위를 늘렸습니다. 대신 비거주 및 다주택에 대해선 기본 공제 요건을 강화했죠.
종부세율은 주택수 기준에서 ‘가액’ 기준으로 바꾸면서 1주택자라 하더라도 시가 40억원을 웃도는 초고가주택에 대해선 3주택 수준으로 세율을 올렸습니다.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은 60%에서 70%이상으로 인상하되, 3주택 이상·1주택이 아닌 조정대상지역 보유자에 대해선 80%로 차등인상했습니다. 대신 다주택자 조정대상지역 소재 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율은 2027년~2028년 한시적으로 완화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정부가 밝힌 이번 부동산세제의 목표는 “공정과세와 과세형평 제고”입니다. 그렇지만 시장에선 비거주·다주택·초고가에 세부담이 집중되면서 이들 보유자의 매물을 끌어내 집값을 잡으려는 정책적 의도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격 상승을 선도하는 강남 등의 초고가주택의 기대수익을 낮춤으로써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것이죠.
① 비거주·초고가주택의 보유세 부담을 높여 ‘계속 들고 있을 비용’을 키우고 ② 다주택자는 2027~2028년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낮춰 ‘팔 때의 비용’을 줄여주고 ③ 시장에 고가주택 매물이 나오도록 유도하고 ④ 강남 등 핵심지역 가격 상승세가 꺾이면 추가 매물이 나오고 집값이 내려가는 선순환인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선 정잭 발표 후 초기 ‘집값’이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만약 초기에 집값이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부담해야 하는 보유세’보다 가격이 더 많이 오르면 집을 파는 대신 ‘버티기’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조세 저항이 큰 상황에서 정책의 효과가 없다는 인식이 초기에 각인되면 정책이 흔들릴 수밖에 없죠. 정부가 호가 하락을 강조한 자료를 낸 것도 ‘집값 하락 조짐 → 매물 증가 → 추가 하락’의 선순환을 의도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우선 정부의 자료대로 세제개편 이후 초고가주택이 밀집된 강남 지역의 가격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13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8월 둘째 주(10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직전 주 대비 0.21% 올라 상승폭이 직전 주(0.26%)보다 0.05%포인트 줄었습니다.
서울 구별로 보면, 강남구(-0.02%)와 서초구(-0.04%)의 아파트 매매가가 각각 14주, 16주 만에 하락했습니다.
그렇지만, 중랑구(0.46%) 금천구(0.30%) 구로구(0.27%) 등 다수 지역에서 오히려 전반적으로 가격이 오르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초고가 아파트 가격은 내릴 것으로 보지만 세제개편안에서 20~30억원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마용성’으로 대표되는 20~30억원대 시장은 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 없다”며 “문재인 정부 당시 가격이 오를 때도 강남이 중심이 아니라 서울 북부 등이 중심이었던 만큼 강남 집값이 떨어지면 나머지도 떨어진다고 기계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초고가주택에 대해 보유 부담을 늘렸더라도 전반적으론 세 부담을 낮춘만큼 가격이 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연구원도 “강남을 잡겠다는 수단이 보유세이지만, 다른 동네는 비싸게 보유세가 매겨지지 않아 집값 하락 신호를 주기엔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13일 내놓은 금융 정책이 세제 개편안과 상반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총량 확대가) 시장에는 ‘유동성 확대 시그널’로 읽힐 수 있다”며 “세제개편안으로 상위 인기지역 가격 흐름은 박스권 흐름을 보이겠지만 완화된 대출총량 관리에 따라 서울 중하위 지역과 비규제 지역 등을 중심으로 거래가 증가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수석연구원도 “남양주 등 공급 대책이 나오는 지역엔 가격이 반영되겠지만 전체 시장 안정으로 이어지기엔 어렵다”며 “과거에도 공급이 지연된 사례가 누적된 만큼 정부가 ‘양치기 소년’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책 효과를 두고 세제를 설계해 세제가 복잡해지는 만큼 조세형평과 정책을 모두 고려하는 것은 지양해야한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정 교수는 “(세제개편으로) 선순환이 될지는 의문”이라며 “전반적인 가격 안정과는 거리가 먼 만큼 정부의 세제개편의 목표가 조세형평인지 무엇인지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이렌을 관능적 유혹으로 기억한다면 원전을 잘못 읽은 것이다.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우리는 그대가 트로이에서 이룬 모든 일을 알고 있노라.”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노래한다. 그 섬에 뱃사람의 뼈가 쌓인 이유는 미지의 쾌락이 아니라 지나간 승리의 기억이었다. 사람을 난파시키는 가장 달콤한 소리는 언제나 한때 옳았던 자기 자신이다.
지금 우리 안에서 울리는 노래도 그렇다. 합당, 연대, 의리. 세 단어의 시제는 전부 과거형이다. 그런데 그 과거의 노래는 지금 누가 부르고 있는가.
정치를 논평하는 자리가 정치보다 강해진 지 오래다. 몇개의 마이크가 여론의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이 정치인의 명운을 가른다. 문제는 그 권력에 책임이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선거로, 공직자는 감사로 심판받지만 평론은 심판받지 않는다. 틀린 예측을 열 번 해도, 어제와 정반대의 말을 오늘 해도, 다음주에 또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나는 이들을 촉법 평론가라 부른다. 판을 흔들 힘은 어른의 것인데 책임을 물으려 하면 아무것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 옆에는 용역 평론가가 있다. 분석이 아니라 편을 파는 사람들이다. 결론이 분석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해석이 아니라 하청이다.
그래서 정치에도 VAR(비디오 판독)이 필요하다. 경기의 오심은 화면을 되돌려 바로잡지만 평론의 오심에는 되돌릴 화면조차 없다. 3년 전 발언을 스스로 확인하게 만드는 장치, 소수가 채널을 독점한 구조를 여는 비평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출연 총량제’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은퇴를 선언하고도 가장 큰 마이크 앞에 앉아 있다면, 그것은 책임만 골라 내려놓은 발언권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이 노래에 붙은 제목이다. ‘노무현 정신’. 지난 3일 야당의 한 중진은 검찰개혁 방향을 겨냥해 이것이 노무현 정신이냐고 물었다. 안에서 정의하지 못한 개념은 반드시 밖에서 무기가 되어 돌아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결정적 장면은 하나같이 자기 진영이 반대한 선택이었다. 이길 수 있는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서 거듭 낙선한 것, 지지자들이 반발한 대연정을 제안한 것, 진보 진영 전체가 등을 돌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인 것. 평가는 갈려도 방향은 갈리지 않는다. 그는 진영의 대표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었다.
탈권위와 보통시민의 정치를 말한 이름이, 지금은 소수가 서로의 확신을 확인하는 명분으로 쓰인다. 그 이름을 가장 크게 부르는 쪽이 실은 그에게서 가장 멀리 떠나 있다. 계승이 ‘우리끼리 다시 뭉치자’로 번역되는 순간, 그것은 계승이 아니라 도용이다.
그사이 국정의 시계는 따로 흐른다. 국정 지지율은 43.3%, 부정 평가는 53.0%다. 세제개편안은 발표 나흘 만에 재검토 지시가 내려졌고, 서울 주택 착공은 연간 목표의 5분의 1에 그쳤다. 이 숫자 앞에서 할 말은 야당이 부당하다는 항변이 아니라, 야당이 옳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못해서 나온 숫자라는 인정이다. 나라가 퇴행하든 사회가 망가지든 이를 개의치 않는 정치가 가장 나쁜 정치다.
다시 오디세우스로 돌아간다. 목마를 설계해 전쟁을 끝낸 그는 서사시 속에서 그 승리를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의 계략이 진보가 아니라 탐욕에서 비롯됐음을 되새기며 괴로워한다. 이긴 자가 자신을 의심하는 것, 그것이 성숙이다.
서사시의 마지막도 복수가 아니다. 구혼자들을 몰살한 뒤 유족들이 창을 들고 몰려오자 신들이 개입해 지난 일을 잊으라고 명한다. 20년의 유랑과 하루의 학살 끝에 시인이 남긴 결론은 하나다. 되갚음으로는 아무것도 세울 수 없다. ‘기억’에 의존하는 정치가 이제는 ‘기대’의 정치로 변해야 할 때이다.
여당에 필요한 것은 진영의 복원이 아니라 성과의 축적이다. 이겼던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무엇을 해냈는지로 기억되어야 한다. 오디세우스가 돌아간 곳은 20년 전의 이타카가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돌아가려는 곳도 마찬가지다. 그곳은 이미 없다.
정부가 대대적인 부동산 공급·금융 대책을 발표한 13일, 국토교통부와 재정경제부는 사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 자료를 바탕으로 강남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의 주요 고가 아파트 호가가 지난 3일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하락했다는 내용의 참고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자료는 국토부가 작성한 것으로 강남구 압구정 현대1·2차 전용 198㎡ 매물이 지난달 13일 119억원에 거래됐으나 세제개편안 이후인 8일엔 27억원 낮은 92억원에 거래됐다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향후 집값 상승 기대심리를 꺾겠다는 ‘대규모 공급대책’과 맞물려, 세제개편 이후 주요 주택 가격도 이미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입니다.
자료가 관심을 모은 것은 정부가 한국부동산원 등 공식 통계가 아니라 이례적으로 민간의 호가 자료를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면적이 같더라도 층수 등 여러조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어 단순 호가만으로는 세제 전후 가격 변화에 대한 정확한 비교가 어렵습니다. 정부 안에서도 “세제 개편 전후 똑같은 물건이 아닌데 한 두개 경우로 효과가 있다고 얘기하기엔 성급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 사이에선 이번 세제개편의 성공을 위해선 집값이 하락하는 ‘시그널’을 줌으로써 매물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정부가 부랴부랴 자료를 배포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그렇지만, 취지와 달리 이번 세제개편을 통해 전반적인 주택가격이 하락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반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강남3구에 밀집된 초고가주택의 가격은 억제할 수 있더라도 세 부담이 낮아진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다른 지역을 중심으로는 가격 상승 압력이 계속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가격은 안정될 수 있을까요.
이번 세제개편안의 핵심은 ‘보유’ 중심의 부동산세제를 ‘거주’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거주용 1주택에 대해선 세부담을 낮춰주고 비거주·다주택·초고가주택에 대해선 세부담을 높인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핵심내용을 보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기본공제액을 거주용 1주택은 현행 공시가격 12억원에서 14억원(시가 약 20억원)으로 올려 과세에서 제외되는 1주택자의 범위를 늘렸습니다. 대신 비거주 및 다주택에 대해선 기본 공제 요건을 강화했죠.
종부세율은 주택수 기준에서 ‘가액’ 기준으로 바꾸면서 1주택자라 하더라도 시가 40억원을 웃도는 초고가주택에 대해선 3주택 수준으로 세율을 올렸습니다.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은 60%에서 70%이상으로 인상하되, 3주택 이상·1주택이 아닌 조정대상지역 보유자에 대해선 80%로 차등인상했습니다. 대신 다주택자 조정대상지역 소재 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율은 2027년~2028년 한시적으로 완화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정부가 밝힌 이번 부동산세제의 목표는 “공정과세와 과세형평 제고”입니다. 그렇지만 시장에선 비거주·다주택·초고가에 세부담이 집중되면서 이들 보유자의 매물을 끌어내 집값을 잡으려는 정책적 의도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격 상승을 선도하는 강남 등의 초고가주택의 기대수익을 낮춤으로써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것이죠.
① 비거주·초고가주택의 보유세 부담을 높여 ‘계속 들고 있을 비용’을 키우고 ② 다주택자는 2027~2028년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낮춰 ‘팔 때의 비용’을 줄여주고 ③ 시장에 고가주택 매물이 나오도록 유도하고 ④ 강남 등 핵심지역 가격 상승세가 꺾이면 추가 매물이 나오고 집값이 내려가는 선순환인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선 정잭 발표 후 초기 ‘집값’이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만약 초기에 집값이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부담해야 하는 보유세’보다 가격이 더 많이 오르면 집을 파는 대신 ‘버티기’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안그래도 조세 저항이 큰 상황에서 정책의 효과가 없다는 인식이 초기에 각인되면 정책이 흔들릴 수밖에 없죠. 정부가 호가 하락을 강조한 자료를 낸 것도 ‘집값 하락 조짐 → 매물 증가 → 추가 하락’의 선순환을 의도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우선 정부의 자료대로 세제개편 이후 초고가주택이 밀집된 강남 지역의 가격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13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8월 둘째 주(10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직전 주 대비 0.21% 올라 상승폭이 직전 주(0.26%)보다 0.05%포인트 줄었습니다.
서울 구별로 보면, 강남구(-0.02%)와 서초구(-0.04%)의 아파트 매매가가 각각 14주, 16주 만에 하락했습니다.
그렇지만, 중랑구(0.46%) 금천구(0.30%) 구로구(0.27%) 등 다수 지역에서 오히려 전반적으로 가격이 오르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초고가 아파트 가격은 내릴 것으로 보지만 세제개편안에서 20~30억원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마용성’으로 대표되는 20~30억원대 시장은 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 없다”며 “문재인 정부 당시 가격이 오를 때도 강남이 중심이 아니라 서울 북부 등이 중심이었던 만큼 강남 집값이 떨어지면 나머지도 떨어진다고 기계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초고가주택에 대해 보유 부담을 늘렸더라도 전반적으론 세 부담을 낮춘만큼 가격이 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연구원도 “강남을 잡겠다는 수단이 보유세이지만, 다른 동네는 비싸게 보유세가 매겨지지 않아 집값 하락 신호를 주기엔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13일 내놓은 금융 정책이 세제 개편안과 상반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총량 확대가) 시장에는 ‘유동성 확대 시그널’로 읽힐 수 있다”며 “세제개편안으로 상위 인기지역 가격 흐름은 박스권 흐름을 보이겠지만 완화된 대출총량 관리에 따라 서울 중하위 지역과 비규제 지역 등을 중심으로 거래가 증가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수석연구원도 “남양주 등 공급 대책이 나오는 지역엔 가격이 반영되겠지만 전체 시장 안정으로 이어지기엔 어렵다”며 “과거에도 공급이 지연된 사례가 누적된 만큼 정부가 ‘양치기 소년’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책 효과를 두고 세제를 설계해 세제가 복잡해지는 만큼 조세형평과 정책을 모두 고려하는 것은 지양해야한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정 교수는 “(세제개편으로) 선순환이 될지는 의문”이라며 “전반적인 가격 안정과는 거리가 먼 만큼 정부의 세제개편의 목표가 조세형평인지 무엇인지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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