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란 반쪽 고명 올리고, 간하지 않은 면발에, 슴슴한 육수만이 전통의 맛? 원래 그런 냉면은 없다
2026-08-2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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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어김없이 냉면을 먹는다. 차가운 국물에 면을 말아 후루룩 먹는 평양냉면은 이제 단순한 여름철 음식 이상의 존재가 됐다. 한 그릇에 1만8000원을 기꺼이 내며 냉면집을 찾는다. 그런데 냉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냉면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모습이 아니다. 냉면은 시대와 기술, 식생활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지금까지 온 음식이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한식문화공간 이음홀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의 ‘제2차 한식 세미나-냉면의 과거와 미래’는 그 흐름을 돌아보는 자리였다. 신동훈 동국대 문화학술원 교수는 ‘조선 후기 물냉면의 탄생 이야기’를,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평양냉면의 나아갈 길’을 주제로 냉면의 과거와 미래를 살폈다.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기까지
냉면의 역사를 한 줄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신동훈 교수는 강연에서 고려 말~조선 초의 ‘냉도’와 ‘창면’ 등 차갑게 먹는 면 음식의 기록을 먼저 소개했다. 이 음식들이 오늘날의 냉면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냉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동치미였다.
16세기 조리서 <주초침저방>에는 겨울철 얼린 무에 정화수를 붓고 익기를 기다렸다가 소금을 넣어 먹는 ‘동침(凍沈)’의 조리법이 등장한다. 이후 동치미의 제조법이 변화하고, 그 국물을 다른 음식에 활용하면서 냉면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렸다. 17세기 <음식디미방>에는 오이지에 생치(꿩고기)를 넣은 생치김치가 등장한다. 19세기 <주식방문>에 이르면 생치김치에 동치미 국물을 더해 감칠맛을 내는 방식이 보인다. 동치미 국물에 고기에서 나온 맛이 더해지면서 오늘날 냉면 육수를 연상케 하는 맛의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 후기의 <규합총서>에는 ‘냉면’이라는 이름과 함께 더욱 구체적인 모습이 등장한다. 신 교수는 책에 기록된 냉면을 이렇게 소개했다. “동치미국에 가는 국수를 넣고 무·배·유자를 한 가지로 저며서 얹고 제육과 계란 부친 것을 채 치고 후추와 백자를 얹었으면 이름하여 냉면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냉면과 비교하면 고명이 상당히 풍성하다. 동치미 국물에 면만 말아 먹은 것이 아니라 생치, 즉 꿩을 백숙으로 고아 기름기를 걷어낸 국물을 동치미와 섞고 여러 향신채를 더했다. 신 교수 표현대로라면 “동치미를 더욱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냉면”이었던 셈이다.
후식에서 한 끼의 음식으로
냉면의 위상이 달라지는 과정은 조리서에서도 읽힌다. 조선 후기의 실제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윤씨음식법>에는 “더운 음식을 먹고 냉면을 먹는 것이 온면보다 낫다”는 내용이 나온다. 뜨거운 음식을 먹은 뒤 냉면을 먹는 식사법이다. 하지만 냉면은 점차 후식의 자리를 넘어 한 끼를 책임지는 일품요리가 됐다. 조선 말기의 음식문화가 담긴 <시의전서>에는 나박김치나 동치미를 사용하고 양지머리, 배, 배추통김치 등을 채 쳐 올리는 냉면이 등장한다. 냉면은 더 이상 동치미에 국수를 말아 먹는 단순한 음식에 머물지 않고 육수와 면, 고명이 각각 역할을 하는 한 그릇의 음식으로 발전했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냉면의 고명이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다는 사실이다. 배와 유자, 제육과 계란, 김치와 양지머리 등이 시대와 조리법에 따라 조합됐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몇가지 고명만이 ‘전통’이었던 것은 아니다.
냉면의 계절도 마찬가지다. 신 교수는 냉면이 여름 음식으로 자리 잡는 데 냉장 유통과 차갑게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겨울에 담가 먹던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던 음식이, 냉장 기술과 유통이 발달하면서 한여름에도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됐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름 냉면’ 역시 주어진 전통이 아니라 기술과 생활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인 셈이다.
파인다이닝이 된 냉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2018년 <냉면의 품격>을 펴낸 이용재 평론가가 ‘평양냉면의 나아갈 길’을 열면서 가장 먼저 꺼낸 것도 변화였다. 그는 냉면의 미래를 맛만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릇과 수저, 공간과 접객까지 포함한 식사 경험 전체를 이야기했다.
“스테인리스로부터 졸업할 때가 되었습니다.” 평양냉면 하면 커다란 스테인리스 사발이 먼저 떠오른다. 스테인리스는 냉면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가볍고 튼튼하고 깨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평론가는 특유의 냄새와 입에 닿을 때의 감촉, 면을 먹기에 최적화되지 않은 스테인리스 수저가 담긴 공동 수저통 등을 언급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스테인리스라는 소재 자체가 아니다. 지금의 냉면 가격과 그에 걸맞은 식사 경험이다. 그는 평양냉면을 ‘한식의 파인다이닝’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판매가격이 짜장면의 2배에 가깝다면 그 가격에 맞는 공간과 식기, 접객 문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평양냉면이 한식에서 드문 일품요리고 반찬을 많이 내지 않아도 되는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한 그릇 자체로 한 끼가 되기 때문에 혼자 먹기에도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하지만 이 평론가는 일부 냉면집의 문화가 변화한 식생활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혼자 냉면을 먹으러 갔을 때 2인 손님을 위한 자리에 앉지 못하고 문이나 계단 옆자리를 안내받았던 경험도 소개했다.
‘슴슴한 맛’도 정말 전통일까
평양냉면을 둘러싼 또 하나의 고정관념은 맛이다. 이 평론가는 어느 순간 ‘슴슴하다’는 말이 평양냉면의 맛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됐지만, 실제 음식의 맛을 판단하기 전에 ‘평양냉면은 슴슴해야 한다’는 기대가 먼저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갑게 먹는 음식은 온도가 낮을수록 맛을 느끼는 방식이 달라진다. 냉면의 맛을 단순히 ‘싱거울수록 전통적’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면에 대한 고민도 공유됐다. 평양냉면의 면은 흔히 메밀과 전분을 섞어 만든다. 메밀에는 글루텐이 없어 메밀 100%로 면을 만드는 것이 난도가 높고 잘 끊어진다. 이 평론가는 100% 메밀을 내세우는 냉면집도 있지만, 그렇다고 메밀 100%가 반드시 냉면의 종착점인 것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그는 지금의 압출식 제면이 메밀의 특성 때문에 선택한 궁여지책에 가깝다고 보고, 더욱 섬세한 자가제면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면에 간을 할 것인가도 그중 하나다.
이 평론가는 면 반죽이나 삶는 물에 간을 하지 않는 현재의 방식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면과 육수가 만나면서 면이 육수의 염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먹는 동안 육수의 맛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냉면을 먹으면서 처음에는 괜찮던 육수가 뒤로 갈수록 밍밍하게 느껴졌다면, 이것 역시 냉면의 면과 육수를 별개의 요소로 볼 것이 아니라 한 그릇 안에서 함께 설계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다시 고명을 생각하다
이 평론가는 지금의 평양냉면이 1세대에서 2세대를 지나 3세대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봤다. 이북에서 내려와 냉면집을 연 세대가 1세대라면, 그 명맥을 이은 자녀 세대가 2세대다. 3세대는 그런 직접적인 접점 없이 “내가 좋아서” 냉면집을 차린 세대다. 그는 “새로 등장한 3세대가 냉면의 고급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평론가는 맛의 경험과 냉면집의 차별화를 위해 “고명의 종류와 구성이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소박한 고명은 냉면의 역사 전체로 보면 오히려 최근의 모습일 수 있다. 계란 고명도 그렇다. 과거 조리서에는 계란을 부쳐 채 쳐 올리는 방식이 등장한다. 삶은 계란 반쪽 고명이 유일한 전통은 아니었던 셈이다.
두 전문가는 냉면의 전통 안에도 이미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냉면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돼 있던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땡볕에서 수십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기를 마다하지 않는 음식 냉면. ‘완냉’의 역사만큼은 면면히 유지될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장쩌민 전 주석 재임 시절 국내외 정세의 혼란함을 언급하며 공산당의 결속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특히 장 전 주석이 1989년 톈안먼 민주화운동 국면에서 올바른 대응을 해 중국의 안정을 지켰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장쩌민 탄생 100주년 대회’ 연설에서 “1989년 봄과 여름 사이 중국은 심각한 정치적 풍파를 겪었다”며 “장쩌민 동지는 당 중앙위원회의 올바른 결정을 확고히 지지하고 실행해 상하이의 안정을 효과적으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1989년 봄과 여름 사이의 정치적 풍파’는 그해 6월 톈안먼 민주화운동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 당시 전국 곳곳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공산당이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유혈 충돌이 빚어졌다. 하지만 장 전 주석이 당 서기를 맡았던 상하이시는 소요 사태 없이 상대적으로 원만하게 넘어갔다.
덩샤오핑 전 주석 등 이를 눈여겨본 당의 원로들이 장 전 주석을 1989년 6월 당중앙으로 발탁했다. 장 전 주석은 1989년 11월 국가주석에 취임해 3세대 중국 지도부를 꾸렸다. 그는 1990년대 중국의 시장경제 개혁과 대외 개방 확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을 추진하며 경제 성장의 기반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시 주석은 장 전 주석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심각한 국내 정치적 혼란이라는 중대한 시험”에서 “개혁·개방을 지속하고, 외교 투쟁을 펼치며, 국가의 독립, 존엄, 안보, 안정을 굳건히 수호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장 전 주석이 주도적으로 다시는 중앙 영도 직위를 맡지 않겠다고 했으며, 2004년 주도적으로 당·국가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사직했다”고 언급했다.
장 전 주석은 후임인 후진타오 전 주석에게 국가주석 자리가 넘어간 뒤에도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후 전 주석이 2004년 8월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 기념 연설에서 “덩샤오핑은 지도 간부 종신 재직제 폐지를 오랫동안 주장해왔다”고 에둘러 비판하자 한 달 뒤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 주석이 장 전 주석의 ‘국가 영도 자리에서의 주도적 사임’을 언급한 것은 자신의 국가주석직 4연임 여부 역시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뜻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지금까지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린 중국 지도자는 마오쩌둥·저우언라이·류사오치·주더·덩샤오핑·천윈 6명뿐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퇴임한 지도자 가운데 원자바오 전 국무원 총리, 왕치산 전 국가부주석 등이 참석했지만, 후 전 주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한식문화공간 이음홀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의 ‘제2차 한식 세미나-냉면의 과거와 미래’는 그 흐름을 돌아보는 자리였다. 신동훈 동국대 문화학술원 교수는 ‘조선 후기 물냉면의 탄생 이야기’를,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평양냉면의 나아갈 길’을 주제로 냉면의 과거와 미래를 살폈다.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기까지
냉면의 역사를 한 줄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신동훈 교수는 강연에서 고려 말~조선 초의 ‘냉도’와 ‘창면’ 등 차갑게 먹는 면 음식의 기록을 먼저 소개했다. 이 음식들이 오늘날의 냉면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냉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동치미였다.
16세기 조리서 <주초침저방>에는 겨울철 얼린 무에 정화수를 붓고 익기를 기다렸다가 소금을 넣어 먹는 ‘동침(凍沈)’의 조리법이 등장한다. 이후 동치미의 제조법이 변화하고, 그 국물을 다른 음식에 활용하면서 냉면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렸다. 17세기 <음식디미방>에는 오이지에 생치(꿩고기)를 넣은 생치김치가 등장한다. 19세기 <주식방문>에 이르면 생치김치에 동치미 국물을 더해 감칠맛을 내는 방식이 보인다. 동치미 국물에 고기에서 나온 맛이 더해지면서 오늘날 냉면 육수를 연상케 하는 맛의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 후기의 <규합총서>에는 ‘냉면’이라는 이름과 함께 더욱 구체적인 모습이 등장한다. 신 교수는 책에 기록된 냉면을 이렇게 소개했다. “동치미국에 가는 국수를 넣고 무·배·유자를 한 가지로 저며서 얹고 제육과 계란 부친 것을 채 치고 후추와 백자를 얹었으면 이름하여 냉면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냉면과 비교하면 고명이 상당히 풍성하다. 동치미 국물에 면만 말아 먹은 것이 아니라 생치, 즉 꿩을 백숙으로 고아 기름기를 걷어낸 국물을 동치미와 섞고 여러 향신채를 더했다. 신 교수 표현대로라면 “동치미를 더욱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냉면”이었던 셈이다.
후식에서 한 끼의 음식으로
냉면의 위상이 달라지는 과정은 조리서에서도 읽힌다. 조선 후기의 실제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윤씨음식법>에는 “더운 음식을 먹고 냉면을 먹는 것이 온면보다 낫다”는 내용이 나온다. 뜨거운 음식을 먹은 뒤 냉면을 먹는 식사법이다. 하지만 냉면은 점차 후식의 자리를 넘어 한 끼를 책임지는 일품요리가 됐다. 조선 말기의 음식문화가 담긴 <시의전서>에는 나박김치나 동치미를 사용하고 양지머리, 배, 배추통김치 등을 채 쳐 올리는 냉면이 등장한다. 냉면은 더 이상 동치미에 국수를 말아 먹는 단순한 음식에 머물지 않고 육수와 면, 고명이 각각 역할을 하는 한 그릇의 음식으로 발전했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냉면의 고명이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다는 사실이다. 배와 유자, 제육과 계란, 김치와 양지머리 등이 시대와 조리법에 따라 조합됐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몇가지 고명만이 ‘전통’이었던 것은 아니다.
냉면의 계절도 마찬가지다. 신 교수는 냉면이 여름 음식으로 자리 잡는 데 냉장 유통과 차갑게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겨울에 담가 먹던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던 음식이, 냉장 기술과 유통이 발달하면서 한여름에도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됐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름 냉면’ 역시 주어진 전통이 아니라 기술과 생활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인 셈이다.
파인다이닝이 된 냉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2018년 <냉면의 품격>을 펴낸 이용재 평론가가 ‘평양냉면의 나아갈 길’을 열면서 가장 먼저 꺼낸 것도 변화였다. 그는 냉면의 미래를 맛만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릇과 수저, 공간과 접객까지 포함한 식사 경험 전체를 이야기했다.
“스테인리스로부터 졸업할 때가 되었습니다.” 평양냉면 하면 커다란 스테인리스 사발이 먼저 떠오른다. 스테인리스는 냉면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가볍고 튼튼하고 깨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평론가는 특유의 냄새와 입에 닿을 때의 감촉, 면을 먹기에 최적화되지 않은 스테인리스 수저가 담긴 공동 수저통 등을 언급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스테인리스라는 소재 자체가 아니다. 지금의 냉면 가격과 그에 걸맞은 식사 경험이다. 그는 평양냉면을 ‘한식의 파인다이닝’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판매가격이 짜장면의 2배에 가깝다면 그 가격에 맞는 공간과 식기, 접객 문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평양냉면이 한식에서 드문 일품요리고 반찬을 많이 내지 않아도 되는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한 그릇 자체로 한 끼가 되기 때문에 혼자 먹기에도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하지만 이 평론가는 일부 냉면집의 문화가 변화한 식생활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혼자 냉면을 먹으러 갔을 때 2인 손님을 위한 자리에 앉지 못하고 문이나 계단 옆자리를 안내받았던 경험도 소개했다.
‘슴슴한 맛’도 정말 전통일까
평양냉면을 둘러싼 또 하나의 고정관념은 맛이다. 이 평론가는 어느 순간 ‘슴슴하다’는 말이 평양냉면의 맛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됐지만, 실제 음식의 맛을 판단하기 전에 ‘평양냉면은 슴슴해야 한다’는 기대가 먼저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갑게 먹는 음식은 온도가 낮을수록 맛을 느끼는 방식이 달라진다. 냉면의 맛을 단순히 ‘싱거울수록 전통적’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면에 대한 고민도 공유됐다. 평양냉면의 면은 흔히 메밀과 전분을 섞어 만든다. 메밀에는 글루텐이 없어 메밀 100%로 면을 만드는 것이 난도가 높고 잘 끊어진다. 이 평론가는 100% 메밀을 내세우는 냉면집도 있지만, 그렇다고 메밀 100%가 반드시 냉면의 종착점인 것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그는 지금의 압출식 제면이 메밀의 특성 때문에 선택한 궁여지책에 가깝다고 보고, 더욱 섬세한 자가제면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면에 간을 할 것인가도 그중 하나다.
이 평론가는 면 반죽이나 삶는 물에 간을 하지 않는 현재의 방식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면과 육수가 만나면서 면이 육수의 염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먹는 동안 육수의 맛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냉면을 먹으면서 처음에는 괜찮던 육수가 뒤로 갈수록 밍밍하게 느껴졌다면, 이것 역시 냉면의 면과 육수를 별개의 요소로 볼 것이 아니라 한 그릇 안에서 함께 설계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다시 고명을 생각하다
이 평론가는 지금의 평양냉면이 1세대에서 2세대를 지나 3세대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봤다. 이북에서 내려와 냉면집을 연 세대가 1세대라면, 그 명맥을 이은 자녀 세대가 2세대다. 3세대는 그런 직접적인 접점 없이 “내가 좋아서” 냉면집을 차린 세대다. 그는 “새로 등장한 3세대가 냉면의 고급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평론가는 맛의 경험과 냉면집의 차별화를 위해 “고명의 종류와 구성이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소박한 고명은 냉면의 역사 전체로 보면 오히려 최근의 모습일 수 있다. 계란 고명도 그렇다. 과거 조리서에는 계란을 부쳐 채 쳐 올리는 방식이 등장한다. 삶은 계란 반쪽 고명이 유일한 전통은 아니었던 셈이다.
두 전문가는 냉면의 전통 안에도 이미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냉면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돼 있던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땡볕에서 수십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기를 마다하지 않는 음식 냉면. ‘완냉’의 역사만큼은 면면히 유지될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장쩌민 전 주석 재임 시절 국내외 정세의 혼란함을 언급하며 공산당의 결속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특히 장 전 주석이 1989년 톈안먼 민주화운동 국면에서 올바른 대응을 해 중국의 안정을 지켰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장쩌민 탄생 100주년 대회’ 연설에서 “1989년 봄과 여름 사이 중국은 심각한 정치적 풍파를 겪었다”며 “장쩌민 동지는 당 중앙위원회의 올바른 결정을 확고히 지지하고 실행해 상하이의 안정을 효과적으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1989년 봄과 여름 사이의 정치적 풍파’는 그해 6월 톈안먼 민주화운동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 당시 전국 곳곳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공산당이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유혈 충돌이 빚어졌다. 하지만 장 전 주석이 당 서기를 맡았던 상하이시는 소요 사태 없이 상대적으로 원만하게 넘어갔다.
덩샤오핑 전 주석 등 이를 눈여겨본 당의 원로들이 장 전 주석을 1989년 6월 당중앙으로 발탁했다. 장 전 주석은 1989년 11월 국가주석에 취임해 3세대 중국 지도부를 꾸렸다. 그는 1990년대 중국의 시장경제 개혁과 대외 개방 확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을 추진하며 경제 성장의 기반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시 주석은 장 전 주석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심각한 국내 정치적 혼란이라는 중대한 시험”에서 “개혁·개방을 지속하고, 외교 투쟁을 펼치며, 국가의 독립, 존엄, 안보, 안정을 굳건히 수호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장 전 주석이 주도적으로 다시는 중앙 영도 직위를 맡지 않겠다고 했으며, 2004년 주도적으로 당·국가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사직했다”고 언급했다.
장 전 주석은 후임인 후진타오 전 주석에게 국가주석 자리가 넘어간 뒤에도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후 전 주석이 2004년 8월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 기념 연설에서 “덩샤오핑은 지도 간부 종신 재직제 폐지를 오랫동안 주장해왔다”고 에둘러 비판하자 한 달 뒤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 주석이 장 전 주석의 ‘국가 영도 자리에서의 주도적 사임’을 언급한 것은 자신의 국가주석직 4연임 여부 역시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뜻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지금까지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린 중국 지도자는 마오쩌둥·저우언라이·류사오치·주더·덩샤오핑·천윈 6명뿐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퇴임한 지도자 가운데 원자바오 전 국무원 총리, 왕치산 전 국가부주석 등이 참석했지만, 후 전 주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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